빨강색이 이쁘네. 이건 타이어가 20인치인가?”
뚜껑이 열리는 신형 포르쉐 911 4S 카브리올레를 본 배영자(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월현2리 ·73) 할머니의 첫 마디다.
일반인들도 자동차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든 타이어 사이즈가 첫 인사라니. 범상치 않은 할머니였다. 흔히 남자의 로망이라고 불리는 포르쉐 스포츠카를 모는 배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직접 강원도 횡성으로 찾아가 봤다.
횡성에 도착하고 나서도 구불구불한 도로를 약 20㎞ 지나자 산 중턱에 위치한 2층 주택이 보였다. 마당에는 작은 비닐하우스가 있었고, 거기엔 블랙 색상의 6세대 911 타르가 모델이 서 있었다.
입구에는 배 할머니의 남편인 전상오(74) 할아버지가 친절하게 마중 나와 있었다. 국내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케이스인지라 궁금한 점이 많았다. 산과 강이 보이는 거실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고가의 스포츠카를 구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영감이 차를 좋아하는데 면허가 없어. TV에서 하는 F1 레이싱 게임도 주말마다 봐. 차는 영감이 타고 싶어 해서 샀어. 다른데 딱히 쓰는 돈은 없고 같이하는 취미가 됐지. 운전은 내가 하고 관리는 영감이 해. 아침마다 일어나서 차를 닦는 게 하루 일과야. 얼마나 애지중지 하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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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어떻게 만났나.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만났어. 학교 다니는 길에 영감 집이 있었고, 우연히 보고나서 날 어지간히도 쫓아다녔지. 영감이 노래를 잘했어. 그때 유행했던 ‘노란셔츠의 사나이’ 부르는 걸 보고 반했지. 그렇게 7년 연애를 하고 평생 살고 있어. 70년도 넘게 살았어. 그때 다툴 때는 세상에 나밖에 없는 것처럼 하더니. 요즘에는 이기려고 해(웃음).
-할아버지가 차를 잘 아시는 것 같다.
영감이 36년 정도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은퇴한지가 15년 됐어. 그때는 국내에서 일하기가 어려워서 스웨덴, 일본, 미국, 이탈리아, 호주 등 해외에 주로 있었어. 그래서 그런지 외국어도 잘하고 기술 쪽으로 해박해. 같이 차를 타다가 소리가 이상하다고 해서 길에 잠깐 세운 적이 있는데 타이어 실밥이 나와 있더라고. 이 양반은 ‘테크니션’이고 난 ‘드라이버’지(웃음).
-강원도에 내려온 지는 얼마나 됐나.
2002년에 집을 지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어. 원래는 (영감이) 외국에 나가있다보니 서울에 살았는데 양반이 눈만 뜨면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내려왔어. 엔지니어라서 그런지 성품 자체가 남자답지 않고 조용해. 나이도 들고 하니까 집 관리하기도 힘들어. 원래는 영감이 청소도 하는데 오늘은 내가 했네.
-손자 손녀는 스포츠카 모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할머니 좋겠다. 이차 누구 줄 건데?” 하지. 그러면 “말 잘 듣는 놈한테 줄 거야”라고 대답해(웃음). 자식들은 위험하니까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조심해서 타라고 하지. 가장 어린 손녀가 19살이야. 다들 운전면허증이 있는 나이라서 그런지 운전해보고 싶다고는 해. 근데 옆에 태워준 적은 있는데 직접 몰게 한 적은 없어. 기분대로 밟다가 자동차 망가지면 어떡해. 길도 내가 들인 차라서 나만 운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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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사랑이 대단한 것 같다.
911 타르가 4S는 2010년 5월에 샀어. 카브리올레는 예쁜데 너무 젊은 사람이 타는 차 같았어. 유리로 된 천장(글라스 루프)이 슬라이딩 방식으로 열려서 쿠페랑 카브리올레 느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포르쉐 클럽 코리아(포르쉐 차량 소유주 동호회)’에도 가입했어. 영암 서킷에 가서 트랙 16번 완주한 적도 있어. 300㎞/h까지 밟아봤어. 평소에는 영감이랑 드라이브도 하고, 시장에 가서 장도 보고 그러지. 4륜구동이긴 해도 겨울엔 잘 안타.
-시골에서 스포츠카 타면 불편한 점은.
고급유 넣는 데가 별로 없어. 30분 걸려 원주까지 나가야 돼. 어제도 원주 나가는 김에 과일 사왔어. 한번은 기름이 없어서 도로에서 차가 멈췄는데, 포르쉐에서 긴급출동 서비스로 탑차를 보내주더라고. 기름은 한 달에 3번 정도 넣는데 여행가면 돈은 더 들지. 부부 취미는 저거밖에 없으니 힘닿는 데까진 타야지.